유찰됐던 그림이 30년 만에 미술관의 첫 얼굴이 됐다 — 색채의 화가가 돌아온 가을
미술관 문을 열자마자 붉은 옷을 입은 여인과 눈이 마주치는 전시가 있다. 짙은 청록빛 화면 위의 강렬한 붉은색, 화려한 옷차림과 달리 무겁고 진지한 표정이다. 한때 경매에서 주인을 찾지 못했던 이 그림이, 30년 전 세상을 떠난 화가의 특별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이 7일 개막한 임직순(1921~1996) 작고 30주기 특별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다(뉴시스 보도, 확인일 2026-10-07).
잊힌 이름이 다시 불리는 방식
임직순은 한국 구상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다. 195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1961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부임해 광주에 정착한 뒤 무등산과 남도의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색으로 '색채의 화가'라 불렸고, 생애 약 25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작고 30년이 지나며 이름은 대중에게서 멀어졌다. 이번 전시는 유화 약 80점을 중심으로 드로잉·수채화·판화와 유품 30여 점까지, 작품과 자료 100여 점을 모은 역대 최대 규모다. '꽃과 여인의 화가'라는 수식어에 가려졌던 풍경화도 대거 나왔다.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 임직순이 생전에 남긴 말, 이번 전시의 제목

멈춘 붓이 남긴 마지막 방
전시장에는 그림 속 여인이 앉았던 라탄 안락의자와 아내가 꽃을 꽂아주던 화병, 물감이 굳은 팔레트와 붓이 함께 나왔다. 그리고 1996년 세상을 떠난 뒤 화실 이젤에 남아 있던 미완성 유작 '팜트리'(1996)가 생전의 이젤과 함께 처음 공개된다. 붓질이 어느 순간 멈춘 그 그림은, 완성작에서는 볼 수 없는 마지막 작업의 시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시는 2027년 2월 14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를 고르는 기준. 첫째, 입구의 '붉은 옷 여인'에서 시작해 풍경화 구역까지 색이 어떻게 바뀌는지 따라가 볼 것. 둘째, 완성작 옆의 스케치와 유품을 함께 보며 한 장면이 그림이 되는 과정을 확인할 것. 셋째, 마지막 방의 미완성 '팜트리' 앞에서는 완성도를 재지 말고 멈춘 붓의 시간을 볼 것.
붉은 옷의 여인은 20여 년 전 경매장에서 돌아섰던 그림이다. 그 그림이 이제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다. 잊힌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다시 불릴 시간을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