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만의 귀환 — 영국박물관이 다시 여는 한국 미술의 2천 년, 앤 공주도 그 자리에 있었다.

런던 여행 일정표를 짜다가 영국박물관을 빼놓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이번 가을, 그곳에서 한국을 마주치는 방식이 조금 특별해졌다. 10월 1일, 영국박물관이 한국 미술 특별전 '한국: 2천년 창의의 여정'의 문을 열었다(삼성 뉴스룸 보도자료, 확인일 2026-10-05).

42년 만의 귀환

영국박물관에서 대규모 한국 미술 특별전이 열리는 것은 1984년 '한국의 보물: 5천년의 미술' 이후 42년 만이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영국박물관이 공동 기획했고, 2027년 1월 31일까지 그레이트 코트 갤러리에서 이어진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 D.C.(약 8만 명), 올해 시카고(약 11만 5천 명)에 이은 해외 순회전의 세 번째 여정이다.

출품작은 총 100건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79건 164점 가운데 국보 10건과 보물 13건이 포함됐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5건과 영국박물관 소장품 6건이 함께한다. 2021년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약 2만 3천여 점의 이건희 컬렉션이 해외 관람객 앞에 다시 서는 순간이다(아주경제 보도).

영국박물관 그레이트 코트의 유리 지붕 아래 전시된 한국 미술품들 — 청자와 불상, 족자 그림이 진열 케이스에 놓여 있다
영국박물관 그레이트 코트의 유리 지붕 아래 전시된 한국 미술품들 — 청자와 불상, 족자 그림이 진열 케이스에 놓여 있다. 사진은 AI 생성 이미지.

소유가 아니라 나눔을 위하여

9월 30일(현지시간) 개막 기념 갈라 디너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참석했다. 리셉션에는 영국 왕실의 앤 공주가 찾아 개막을 축하했고, 갈라 디너에는 영국 정·관계와 글로벌 기업, 문화계 인사 240여 명이 모였다. 존 힐리 재무장관, 카니슈카 나라얀 AI 장관, ASML·머크·자이스·imec의 최고경영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세계일보 보도).

"For generations, my family has held a guiding principle that art and culture should be preserved and shared." (번역: "여러 세대에 걸쳐 우리 가족은 예술과 문화는 보존하고 함께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9월 30일 갈라 디너 환영사(출처: 삼성 뉴스룸)

이날 행사장에는 6·25 참전용사 3명도 초대됐다. 이재용 회장은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전했고, 지난 7월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을 찾았던 앤 공주에게도 사의를 표했다. 이병철 창업회장이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세우고 미술품 수집을 시작한 이래, 이건희 선대회장이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존하기 위해' 평생 작품을 모았다는 가족의 철학도 소개됐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청백자 항아리와 족자 그림 앞에 서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청백자 항아리와 족자 그림 앞에 서 있다. 사진은 AI 생성 이미지.

선택 기준 정리: 해외 미술전을 고를 때는 세 가지를 본다. ① 출품 규모와 급 — 국보·보물이 포함된 100건급인지 ② 공동 기획의 무게 — 소장 기관이 직접 나섰는지 ③ 순회전의 궤적 — 앞선 도시의 관람객 수(워싱턴 8만, 시카고 11만 5천 명)가 말해주는 검증된 전시인지. 런던에 갈 계획이 있다면 2027년 1월 31일 이전에 영국박물관 그레이트 코트 갤러리를 일정에 넣자. 가지 못한다면 같은 컬렉션의 국내 상설전(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이 대안이 된다.

2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유물이, 이제 런던의 유리 지붕 아래에서 다음 2천 년을 기다린다.